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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품안에 있을 때 소중히 여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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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전하기와 밥하기 남편이 말한다. 이번 휴가는 우리집에 가서 어머니아버지랑 같이 여행가면 어때? 어디 펜션이나 콘도... 작년에 재밌었잖아. 머리가 아프다. 나는 가기 싫다고 했다. 가면 나 밥이나 하란 소리잖아, 라고. 그랬더니 아니란다. 이왕 나가는 거 우리 다 사먹자! 라고 이제는 믿을수도 없는 소리를 날린다. 우리 어머니, 밥 해주는 도우미 아주머니 계시지만 내가 가면 아주머니 휴가 보내신다. 느이 아버지 며느리가 차린 밥 좋아하신다... 라고 한다. 입맛 무척 까다로우신 어른... 시댁에 갈 때면 반찬걱정 밥걱정에 며칠 전부터 소화가 안된다. 여행도, 늘 그랬다. 여행을 가도 삼시 세때 뭐 사먹는 걸 싫어하신다. 이건 이래서 맛없고, 저건 저래서 싫다... 결국은 콘도에서 밥 해먹어야 한다. 나는 밥을 해야 하고..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8. 15.
  • 엄마, 사랑합니다 얼마 전 50을 넘긴 저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싱글파더입니다. 아들 녀석이 5살 되는 해 아내는 저희를 버리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 이후로 재혼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하늘이 내게 내려준 인연이 더 이상 없었는지 지금까지 쭉 혼자서 아들을 길러 왔습니다. 어린 아들 녀석이 어디 가서 편부가정이라는 티가 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투박한 남자의 손으로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하기는 힘들었나 봅니다. 아들이 사춘기 이후 왠지 저를 대하는 것이 서먹해졌고 저도 덩달아 이제는 다 컸다고 생각하고 소홀히 하게 되고 그러면서 멀어지고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되고... 결국 아들이 군입대하는 날 마중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다 겪는 일에 호들갑 떨 ..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8. 7.
  • 아이는 하녀가 아니라 여왕이 키워야 한다 http://www.ddanzi.com/news/1328.html [딴지일보] 펌 [생활] 아이는 하녀가 아니라 여왕이 키워야 한다. 아내와 14년 째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부부싸움을 해 왔지만, 아이들 앞에서 싸운 적은 거의 없다. 냉전을 벌이면서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을 보고 딸아이가 ‘엄마아빠 싸우는 거야?’라고 물은 적은 몇 번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 앞에서 아내에게 큰소리를 낸 적은 없다. 내 아이들을 하녀가 아니라, 여왕이 키우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엄마에게 ‘단호함’이 있어야 한다.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주지시키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아이를 이기지 못하는 엄마들이 많다. 아이가 엄마의 단호함을 인정하지 ..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8. 7.
  • 부모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버지』라면.. 그 아버지를 지배하는 것이 『어머니』이다.. 그리고 그 둘을 지배하는 것이 『자식』이다.. 그래서 흔히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한 번 정도는 부모도 자식을 이길 때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건 부모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때만 그렇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8. 7.
  • 이혼남 이야기 나는 결혼 10년차이다. 하지만 이혼경력 2년차이기도 하다. 나에겐 아들 한명과, 딸 한명이 있다. 그리고 아내는 없다. 그 자리를 내가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아내는 나의 곁을 떠났다. 부부는 물방울과 같은 것이다. 두 물방울이 만나서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여느 부부처럼 우리도 한때는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었다. 아내는 애교도 많았고, 한편으론 엄마 같은 포근함을 지닌 여자였다. 우리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부모님과 가까이 살면서 부터였을 것이다. 거리상으로 10분 정도의 거리로 우리의 보금자리를 옮겼다. 첫애를 놓은 후였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어느 순간 아내는 투정이 늘기 시작했다. 첨엔 다독여 주기도 해보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나 역시도 아내가 못 마땅했다. 부모님과 한집에 살..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8. 7.
  • 나는 나쁜 남편입니다 2001년 결혼한지 17년차.. 서너번의 선을 보고 마지막으로 딱 한번 만나보란 가족의 권유에 다섯번째의 만남에서 나타난 지금의 내 아내.. 생머리에 옆가르마를 하고 깔끔하게 하나로 묶은채로 날 보며 웃어주었던 아내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했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며 한두해가 지나고 세명의 아이들을 낳고 점점 싸우는 횟수도 많아지며 17년째가 되었다. 퇴근하고 돌아와보니 아내는 아이들이 먹다 남긴 분식 찌꺼기를 바닥에 앉아 손으로 집어먹으며 왔냐는 인사를 한다. 한쪽 다리를 구부려 가슴에 대고 순대를 집어먹는 아내의 저런 모습이 이제는 신물이 난다. 난 속으로 꼽추같이 추하다는 생각을 한채 대꾸도 안하고 방에 들어와 답답한 넥타이를 풀고 침대에 누웠다. 살짝 열려진 문 틈새로 아내가 꾸역꾸역 분식을 먹..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8. 7.
  • 깨진 그릇에 손을 베이고 나서야 배운다 깨지기 전의 그릇은 아름답고 소중하지만, 깨진 그릇은 여지없이 칼날이 되어 내게 향하기 마련이다. 뒤늦게 후회하며 깨진 그릇을 어떻게든 다시 붙여보려고 애쓰다 손을 베이면 그제서야 비로소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은 품 안에 있을 때 소중히 여길 것. 깨진 그릇에 손을 베이고 나서야 배운다. - 박광수, 『참 서툰 사람들』 중에서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8. 7.
  • 세상이 원래 그렇다 2008.09.21 18:39 세상이 원래 그렇다 들판이 왜 붉지 않고 푸르냐고 하루 종일 불평만 늘어놓는 붉은 메뚜기는 하늘을 나는 새의 눈에 띄어서 잡아 먹혀 버린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8. 5.
  • 낙타의 배신 2010.06.25 15:01 ‘낙타는 사람을 배신하는 짐승이라서, 수천 리를 걷고도 지친 내색을 않다가 어느 순간 무릎을 꺾고 숨을 놓아버리지.’ -연금술사 中 동행하는 사람을 따라 충실하게 걷다가 까탈을 부리지도 않으며 충실하게 걷다가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충실하게 걷다가 결국 숨이 끊어져버리는 가엾은 낙타에게 위대하고 숭고하다 칭찬하는 대신 ‘배신하는 짐승’이라 비난하는 이유는, 낙타와 사람이 ‘동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낙타와 사람이 ‘사막을 건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일견 고상해 보이는 ‘침묵’과 ‘무던함’ ‘오래 참음’ 따위의 성향은 저 혼자, 저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는 미덕일 수 있지만, 누군가와 ‘동행’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게다가 그들이 사막처럼 고되고 두려운 여정 중에..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8. 5.
  •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나 들으라고 하는말2 2010.04.02 15:37 남을 미워하면 저 쪽이 미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미워진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미운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면, 그 피해자는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하루 하루를 그렇게 살아가면 내 삶 자체가 얼룩지고 만다. -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법정스님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8. 5.
  • 마음의 주인이 되라 나들으라고 하는 말 2010.03.31 09:20 어제 하루 종일 읽은 글 마음의 주인이 되라 내 마음을 내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한도인[閑道人]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부침하는 중생이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 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서라기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정말 우리 마음이란..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8. 5.
  • 석차는 68명 중 68명 이었다 2010.03.24 21:35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8. 5.
  • 아버지께 한양대학교 기계공학부 자유게시판 아버지께 - 98훈 ---------------------------------------------------------- 어렸을때가 가끔 떠오른다. 본격적으로 내 기억력이 출발하는 시점은 대략 내가 유치원에 들어갔던 1985년 무렵.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남들보다 똑똑한줄로 착각했던 어머니께서(아직도 완전히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신...) 날 1년 일찍 유치원에 들여 보내시려다가 결국 포기하고 태권도 도장에 보내셨던 것 같다. 이미 초등학생이었던 누나는 그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집은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한신아파트(24평형) 323동 1112호 였다. 언제나 우리 집은 이렇게 세 가족이었다. 적어도 내 어린 기억속엔 그렇다. 아버지...보다 차라리 자..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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