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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하기와 밥하기
아이런맨
2010. 8. 15. 01:31
남편이 말한다.
이번 휴가는 우리집에 가서 어머니아버지랑 같이 여행가면 어때? 어디 펜션이나 콘도... 작년에 재밌었잖아.
머리가 아프다.
나는 가기 싫다고 했다.
가면 나 밥이나 하란 소리잖아, 라고.
그랬더니 아니란다.
이왕 나가는 거 우리 다 사먹자! 라고
이제는 믿을수도 없는 소리를 날린다.
우리 어머니, 밥 해주는 도우미 아주머니 계시지만
내가 가면 아주머니 휴가 보내신다.
느이 아버지 며느리가 차린 밥 좋아하신다... 라고 한다.
입맛 무척 까다로우신 어른...
시댁에 갈 때면 반찬걱정 밥걱정에 며칠 전부터 소화가 안된다.
여행도, 늘 그랬다.
여행을 가도
삼시 세때 뭐 사먹는 걸 싫어하신다. 이건 이래서 맛없고, 저건 저래서 싫다...
결국은 콘도에서 밥 해먹어야 한다.
나는 밥을 해야 하고
어머니는
나 밥하는거 손뗀지 오래라 모르지, 하시며 드러누우신다.
밥상 차리면 칭찬은 많이 하신다.
하지만 그 칭찬 뒤에 항상 모자라는 점을 지적하신다. 생선이 짜구나. 나물이 싱겁구나.
그리고 설거지...
내 뒤로 하하호호 웃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지고
배에 물 튀겨가며 하는 내집 아닌 곳에서의 설거지는 참 서럽다.
저녁먹고 나면
과일먹자고 하시고
느이아버지는 사과 좋아하시고
느이 남편은 포도 좋아하고
우리 손자도 지 아빠 꼭 닮아서 포도 좋아하지! 라고 자랑스럽게 사 오신 과일들을 꺼내놓으신다.
나는 수박과 복숭아를 좋아하는데
시댁식구들은 수박을 싫어하지... 복숭아는 잘 물러서 싫으시단다.
나의 입맛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왕왕거리는 티비 소리, 시끄러운 대화 속에서 불안한 잠을 자고 나면
아침...
또 밥을 해야 하고
어제 먹던 국, 찌개, 반찬이 올라오면 안되는 입맛들...
여기는 여행지인데...
생선도 꼭 있어야 하고...
이집 식구들은 왜이런가 모르겠다.
낮에 어딜 돌아다녀도 차 옆자리는 아버님, 걸을때는 아들 팔짱을 끼시는 어머님
짐은 내 차지... 우는 아이도 내 차지.
재미없다.
다니는 곳도
잠시잠깐 걸을 수 있는 곳... 차는 지척에 두고
뜨거운 볕 조금만 쬐어도 아이구 두통이 나네, 우리 그만 들어가서 시원한 국수나 말아먹자...
더 놀고싶다고 방에 들어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는 안중에도 없다.
아유 쟤가 누굴 닮아 저리 찡얼대. 우리 아들은 얼마나 착하고 순했는데.
여행와서도
둘이 버는 너희들이 돈 다 내라! 하시고
여행와서도 백화점에 들르시고 느이 아버지 여름옷이 없구나 내가 이번에 친목계에서 어딜 가는데
입을 옷이 없구나...
그 옷 다 사는 아들....
그래 우리 아들이 최고구나 칭찬에 입이 미어지는 못난 남편
그래봤자 그 카드값 우리 둘이서 값는거지
언제나 빠지지 않는 레파토리
누구네 집 며느리가 잘 못 들어와서 그 집 어른들이 그 아들네에겐 유산 한푼 안준다고 했지?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어른한테 못하는 몹쓸것한테 돈이 뭔말이야. 다 쓰고 죽지.
이런 이야기를 꼭 내 앞에서 새삼 첨 하는 이야기인듯, 들으란 듯이 하신다.
시댁은 부자다.
하지만 말로만 여기 땅 있네, 저기 아파트 있네...
저 레파토리는 협박일 것이다.
남편은 눈치를 보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난 그 돈 없어도 살 수 있는데....
친정도 잘 사는데..
시댁의 돈에 관심없는 나는
왜 이렇게 자존심 상해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걸까.
왜 여행을 왔을까.
집에서 누워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국 찌개 냉면 곰취나물 다 해달라고 하시지.
직장생활 하는 며느리
돈 번다고 밥 챙기는 거 소홀히 하지 말라고, 그럴거면 그만두라고 하신다.
그러면서도 요즘
혼자벌어 참 살기 힘들다더라....
아범은 회사다니기 힘들지 않느냐 고단하겠구나 온갖 칭송을 다 듣는데
비슷한 연봉을 받는 나는
돈 번다고 밥 안 챙기면 안 되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 집에서 어떤 존재인가.
이제까지의 여행이 다 그랬다. 늘 그랬다.
올해는 내가 싫다고 했다.
이번 여름에는 동생네와 함께 유럽을 가려고 돈을 모았었다.
오래 모아서... 환율이 올랐지만 갈 수 있을거라고... 봄부터 설레였는데
남편의 말대로 시부모님과 함께 펜션으로 콘도로 간다면
올해도 나의 여행은
밥하고, 밥차리고, 설거지하고, 다시 밥하고,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 장 보고... 이렇게 끝날 것이다.
펜션도 콘도도 다 싫다고.
그랬더니 이 남자는 삐졌다.
왜 싫으냔다.
나는 가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도우미 아줌마로 전락해버리는데
그런 여행 이제 가기싫다, 나도 휴가때는 좀 쉬고싶다, 라고 했더니
일년에 며칠인데 그게 싫으냐... 라고 한다.
자기는 우리 친정에 가면 장인어른 장모님 모시고 구경도 시켜드리고 운전도 오래 한단다.
그래서 자기도 피곤하단다.
자기도 우리 친정 가면 나랑 똑같이 어른 모신단다.
하이고....
그러셔...
운전도 당신이 다 해?
조금 하다가 피곤하다고, 나한테 하라고 하는 주제에.
뻣뻣한 얼굴로 어디 잠시 같이 다녀주는 것도 감지덕지 하란 거야?
잠시 운전하고, 맛난 거 사드리고, 퍼질러 자다가 저녁에 같이 바둑 두고 같이 티비보고 먹고
이렇게 고작 하루 보내드리고
이서방 수고했네.... 고단하겠네 소리 듣고
그 다음날부터는 친정에서 계속 잔다.
자고 또 자고...
그래도 엄마는 오랜만에 온 사위가 반가워서
사위 좋아한다는 음식 끼니마다 해서 주고
유기농 포도 사놨다가 포도킬러인 사위에게 주고
이서방 이거 이번에 어디서 들어온 좋은 것이네, 하고 챙겨주시고
자는 사람 깰까봐 아이 데리고 나가서 조용히 놀아주신다.
나 몰래 사위에게 용돈도 주신다.
자네 직장생활 힘들지, 힘내게 하시면서 돈봉투 주시는거, 내가 모를까봐.
청약한 아파트 중도금도 한회 내어주신다고 하신다.
내가 괜찮다고, 우리 다 할수 있다고 했는데 날 슬쩍 흘겨보는 이 남자.
그러면서도 고맙습니다, 말 한마디는 뻣뻣한 이 남자.
엄마는 직장생활하는 딸 때문에 손자랑 사위 못 먹고 힘들까봐
맛난거 많이 해주라고... 힘들게 하지 말라고... 너희들이 잘 살아야지...
우리 사위 온 김에 보약 한 재 지어야겠구나...
아이고 우리 딸도 힘든가보구나... 얼굴이 상했다.
엄마 집에 오면 밥 하지 말고 푹 쉬어라...
차게 식힌, 하나도 무르지 않은 예쁜 복숭아 꺼내주신다.
엄마....
내가 이렇게 살려고
공부해서, 대학가고
결혼해서...
이렇게 사는걸까...?
엄마는 나 이러라고.... 낳아서, 그렇게 힘들게 뒷바라지 해서 나 키웠어....?
시댁과 친정...
운전과 밥하기...
그래.
참 퍽이나 공평하겠다.
나는 이번 휴가부터 아주 나쁜 며느리가 되어야겠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